파명과 파시조

시조 춘계공(椿桂公) 갈명(비문) - 7世 인비(仁庇)

1세(世) 시조(始祖)의 휘(諱)는 춘계공(椿桂公)이며 고려 인종, 의종 양 조정에 벼슬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 2세(世)의 휘는 수승(守升)이고, 묘소는 광주 온정동(廣州 溫井洞)에 있다고 전해오는데 알려지지 않았다.

3세(世)의 휘는 단성(端誠)이고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다.

4세(世)의 휘는 유광(有光)이고 좌경군(左京軍)을 지냈다.

5세(世)의 휘는 겸(謙)이고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6세(世)의 휘는 공량(公亮)이고 국자진사를 지냈으며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머리깎고 북방 이민족의 복장을 하라는 명(命)이 내리자 불복하고 은거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7세(世)의 휘는 인비(仁庇)이고 호조총랑(戶曹總郞)을 지냈다.

7세(世)까지의 묘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8세(世)의 휘는 희백(希伯)이고 고려 남부부령(南部副令)을 지냈다.

이때부터 문중을 빛낸 후손이 많고 빛나는 문헌(文獻)이 많으나 다 기술하기 어렵다. 아- 갈라진 물줄기가 긴 물은 그 물 근원이 반드시 깊으며,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는 그 뿌리가 튼튼한 법이다. 공의 덕업(德業)이 그렇듯 성대(盛大)하지 않았던들 어떻게 후손이 이렇듯 번창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묘소가 전해지지 않아 우리가 근본의 은덕을 정성드려 갚을 묘소가 없음에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므로 신축년(辛丑年)에 도유사(都有司) 재훈(在薰) · 강연(康淵)씨 등 종중의여러분과 협의하여 찬조금을 모아 여기에 돌을 다듬어 비석을 세우고 제단을 설치하여 이제는 높으신 영령을 봉안한 곳이 있으니 뭇 후손들이 조상을 우러러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29 세손 전원성군수 중연(重淵)  29 세손 영연(泳淵) 삼가 기록함. 그 사적을 써서 비 뒷면에 기록하노라.

파명(派名)과 파시조(派始祖)

1 ) 동정공파(同正公派) 始祖. 임(琳)

9세 판위위시사 녹규공(祿圭公)의 맏아들로 봉어동정(奉御同正)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다. 공양왕 말기에 이성계 세력에 대항하다가 청주 감옥에 갇혔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을림(乙琳)으로 개명하고 객지를 유랑하며 행방을 은익하였다 함. 후손들이 춘천과 경기도 평택 일대에 퍼졌다.

2) 병사공파(兵使公派) 始祖 침(琛)

9세 녹규(祿圭)의 3남으로 武科 등제하여 관직이 종2품 강원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운곡원천석(耘谷 元天錫)선생의 사위다. 그 후손들이 북한지역에 널리퍼졌고 남한에서는 별로 찾을 길 없으니 안타깝다.

3) 주부공파(主簿公派) 始祖 완(玩)

11세 재령현령 방진(邦珍)의 맏아들로 주부(主薄)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향리에 은거했다. 그러나 손자인 포(苞)는 벼슬길에 나가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이 되었다. 포의 손자인 세영(世榮)이 충남 부여로 옮겨가 그 후손들이 부여와 서천을 비롯한 층청도와 전라도 일대에 퍼졌다.

4) 은사공파(隱士公派) 始祖 기(起)

11세 방진(邦珍)의 차남 거(珉)의 6형제 중 맏이가 起이다. 높은 학문을 닦았으나 선조의 유훈을 받들어 벼슬길도 외면하고 향리에 숨어 살았다. 문중을 잘다스리고 자손들을 교화하여 진정한 은사(隱士)로 기림 받았다. 자손들이 가장 많이 퍼졌으며 원주, 횡성을 중심으로 전국에 흩어져 산다.

5) 교도공파(敎導公派) 始祖 추(趨)

12세 珉의 2남으로 학문이 깊어 그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갔다. 멀리 맹산(孟山)으로 초빙되어 교도(敎導)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고 훌륭한 스승으로 추앙 받았다. 세상에 드문 오대봉군(五代奉君)의 영예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趨의 후손이다. 북한 지역과 충청도 일대에 퍼졌다.

6) 사용공파(司勇公派) 始祖 월(越)

12세 珉의 3남으로 사용(司勇). 수의(修義) 등을 지냈다. 후손들이 양평을 비롯한 경기도 일원에 분포한다. 양평의 입향시조를 모신 종중산만도 250 정보에 이른다. 사용공파 양평 전통종가(傳統宗家) 종손 원규(元奎)는 누대의 만석군으로 숱한 선행으로 유명하다. 경기도에서 인정한 종가이다.

7)사직공파(司直公派) 始祖 부(赴)

12세 珉의 4남으로 司直을 지냈다. 사직은 5위 소속의 행정 실무자다. 후손들이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에 퍼져 살다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많다. 대학자 광정(光庭)을 비롯하여 학자와 문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8) 갈촌공파(葛村公派) 始祖 필

12세 珉의 5남으로 치악산 아래 갈촌에 숨어 살았다.

기쁨과 즐거움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자연과 더불어 살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였다.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고 사람들이 존경의 뜻으로 갈촌처사(葛村處士) 라 불렀다. 영의정 旭을 비롯한 武科 장원 등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후손들이 주로 홍천과 춘천에 정착했으며 서울, 원주 일대에 퍼졌다.

9) 평천공파(平川公派) 始祖 진(趂)

12세 珉의 6남으로 세상 명리에 뜻이 없었다. 숨어서 덕을 쌓으며 평천강(平川江. 오늘날 원주 섬강)에 나가 고기도 낚고 시와 음악을 즐겼다. 두루 세상 구경을 다니며 막힘없이호쾌하게 살았다. 사람들이 평천거사(平川居士)라 불렀다. 후손들이 원주를 비롯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