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이씨(原州李氏)의 원조(元祖)는 서기 기원전(紀元前) 200년대에 중국 한고조(漢高祖)때 진란(秦亂)을 피하여 중원절서지방(中原浙西地方)에서 고조선(古朝鮮)에 들어오신 이래 고대(古代) 씨족사회(氏族社會)를 이루고 군거(群居)하여 신라(新羅) 16대 흘해왕조(訖解王朝)(서기310년-365년대)에 원시조(遠始祖) 휘(諱) 진민공(眞民公)께서 신라에 득사위(得仕位)하시고 진민공의 27세손인 휘(諱) 도균공(道均公)의 둘째(次男)이신 28세손 휘(諱) 춘계공(椿桂公)께서 고려17대 인종(仁宗), 18대 의종(毅宗) 양대(兩代) (서기1122년-1170년)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내신 바, 춘계공(椿桂公)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그 후손이 원주에 집성촌을 이루고 원주(原州)를 본관(本貫)으로 하고 소목상전(昭穆相傳)하여 오늘의 대성(大姓)으로 발전하여왔다.
시조(始祖)로부터 8세손(八世孫) 중시조(中始祖) 희백(希伯) 부령공(副令公)의 자(子) 9세손(九世孫) 녹규(祿圭) 판위공(判衛公)이 10세(十世) 임공(琳公), 인공(璘公), 침공(琛公) 3형제를 두었으니 1男 임(琳) 봉어동정공(奉御同正公)이 동정공(同正公) 시조(始祖)이며, 2男 인공(璘公)의 자 11세손(十一世孫) 방진(邦珍) 현령공이 12세손인 아들 완(玩) 주부공(主簿公)과 거(琚) 봉례랑공(奉禮郞公) 형제를 두었으니 장남(長男) 완공(玩公)이 주부공(主簿公) 파시조(派始祖)가 되었고, 차남(次男) 거공(琚公)이 아들 6형제(六兄弟)를 두었으니 13世 기(起), 추(趨), 월(越), 부(赴), 필(䟆), 진(趂) 6형제(六兄弟)가 각기 은사공(隱士公), 교도공(敎導公), 사용공(司勇公), 사직공(司直公), 갈촌공(葛村公), 평천공(平川公)으로 6개 파시조(派始祖)를 이루게 되었고, 녹규(祿圭) 판위공(判衛公)의 3남(三男) 침(琛) 병사공(兵使公)은 병사공파(兵使公派) 시조(始祖)로서 모두 9개파(派)로 분파(分派)되어 있다.